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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복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previous/the Gospel 2014. 2. 3. 10:49반응형
2월 3일 복음말씀
마르코 5,1-20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떼가 있었다.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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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 상 )
주일 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에 오늘 복음의 내용을 듣고서
좀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과 더러운 영들 사이의 대화의 내용도,
그 영들이 ‘군대’라고 하는 표현도 낯설었지만,
무엇보다도 그 마귀들이 애꿎은 돼지들에게 들어가
호수에 빠져 죽는 모습이 너무나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사실 지금도 오늘의 복음에 묘사된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것을 본 사람들이 기겁하였던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이 이해하기 힘든 성경 말씀의 깊은 뜻을 막연하게나마 처음으로
감지한 것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 나가다가 『악령』이라는 소설을 만났을 때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의 머리말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돼지 떼를 호수로 몰아넣은 더러운 영들의 이야기를 골랐습니다.
그의 가장 난해한 소설로 꼽히고 또 완성도에서도
논란이 많기도 한 작품이지만 저는 여기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까닭인지 소설을 읽은 지 아주 오래되었지만
오늘 복음 말씀을 대하면 먼저 이 작품이 떠오릅니다.작가가 이 성경 구절을 선택한 이유를, 머리말에 같이 싣고 있는
러시아의 대시인 푸시킨의 시구에 비추어 보면 조금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때려죽인다고 해도 흔적이 보이지 않는군./ 길을 잘못 들었어.
이제 어떡한담./ 아무래도 악령이 우리를 들판으로 내몰아서,
사방을 헤매게 만드나 보다.”
이 소설에서 도스토옙스키는 허무주의나 무신론,
공산주의 같은 이념에 사로잡혀 진정한 삶의 방향을 상실하고 있는
당시의 젊은이들과 사회의 모습을 그려 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서로 파괴하고 자기 자신마저 죽음으로까지 내몰게
하는 혼돈 시대의 배후인 ‘악령’의 특징을 보여 주려고 노력합니다.그는 이를 윤리적 감각과 타인을 제대로 사랑하는
능력을 잃은 정신적 공허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막다른 길로 질주하는 돼지 떼 같은 이 시대의 혼돈 속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시선이 향하고 우리의 귀를 기울여야 하는 곳은,
주님께서 계신 곳이어야 합니다.-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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